신진서의 첫 패배 충격에도 마한의 심장 영암이 드라마 같은 역전극을 연출했다. 17일(토)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1라운드 3경기에서 마한의 심장 영암이 한옥마을 전주에게 3-2 대역전승을 거뒀다.
포스트시즌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4위 자리를 근근이 지키고 있는 한옥마을 전주, 그리고 충격적인 5연패 수렁에서 벗어나야 하는 마한의 심장 영암이 만났다.
▲ 1국 시작을 한참 앞둔 시각, 강유택(한옥마을 전주)이 차분하게 대국을 준비하고 있다.
1국 한옥마을 전주 강유택(5지명) vs 마한의 심장 영암 신진서(1지명)
강유택, 349수 백 1.5집 승. 한옥마을 전주 1-0 마한의 심장 영암
바늘구멍 같은 선발전을 통과하며 3년 만에 바둑리그에 복귀한 강유택은 시즌 6전 전승, 그리고 전체 기전에서 14연승을 달리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는 이번 시즌 9전 전승을 포함해 바둑리그 17연승을 기록하고 있는 절대 강자 신진서. 상대 전적은 신진서 기준으로 3승 1무 1패. 2015 시즌 3패빅 무승부가 유독 눈길을 끈다. 리그에 둘만 남은 전승자들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전승자들의 맞대결답게 바둑은 팽팽하게 흘러갔다. 근소한 우세를 잡은 신진서가 중앙 대마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실착이 나왔다. 기회를 잡은 강유택이 침착하게 전세를 뒤집었다. 미세한 차이 속에 진행된 종반전, 강유택이 빈틈없는 마무리 실력을 선보이며 끝까지 1.5집 차이를 지켜냈다.
이번 시즌 최대 이변이 발생했다. 강유택이 신진서의 바둑리그 18연승을 저지하며, 올 시즌 7전 전승의 유일한 전승자로 남았다. 놀랍게도 한옥마을 전주가 선제점을 가져갔다.
* 3패빅 : 서로 양보할 수 없어 반복되는 순환패 형태를 일컬으며, 2015 시즌 신진서(CJ E&M)-강유택(티브로드) 대국에서 바둑리그 사상 처음 발생했다. 무승부 시 재대국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무승부 처리된 바 있다.
▲ 비록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지만 '전승자 맞대결'에서 값진 승리를 거둔 강유택(한옥마을 전주)
2국 한옥마을 전주 양딩신(후보) vs 마한의 심장 영암 심재익(3지명)
양딩신, 185수 흑 불계승. 한옥마을 전주 2-0 마한의 심장 영암
확실한 1승 카드를 잃은 영암에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주로 후반전에 출전했던 심재익이 처음으로 2국에 나섰다. 5라운드부터 지독한 6연패 수렁에 빠져 승리가 절실한 상황. 그런데 상대가 중국 용병 가운데 최상위 랭커인 양딩신(중국 랭킹 2위)이었다.
집 바둑 양상으로 흘러가던 국면은 심재익이 상변에서 양딩신의 돌을 끊어가며 혼전 양상으로 돌변했다. 하지만 심재익이 별다른 대가 없이 자신의 진영에서 상대를 허무하게 살려준 뒤로는 양딩신의 일방적인 페이스였다. 한옥마을 전주가 2-0으로 영암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다.
▲ 2주 연속 바둑리그에 출전하며 연승을 거둔 양딩신(한옥마을 전주)
3국 마한의 심장 영암 쉬하오훙(후보) vs 한옥마을 전주 변상일(1지명)
쉬하오훙, 137수 흑 불계승. 마한의 심장 영암 1-2 한옥마을 전주
이번 시즌 세 차례나 3-0 완봉승을 거둔 전주는 속전속결로 승부를 끝내기 위해 에이스 변상일을 출격시켰다. 이에 맞서 영암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는 대만의 일인자 쉬하오훙이었다.
중앙 승부처에서 거친 몸싸움이 시작됐다. 흑백이 서로 끊고 끊기는 공방전 속에 변상일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러나 변상일이 승부를 끝낼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며, 상대의 역공을 허용하고 말았다. 대마의 생사를 확인한 변상일이 137수 만에 돌을 거뒀다. 쉬하오훙의 역전승으로 영암이 기사회생했다.
▲ 양딩신, 안성준, 신민준에 이어 변상일까지 리그를 대표하는 강자들을 연이어 상대하며 시즌 2승 2패를 기록한 쉬하오훙(마한의 심장 영암)
4국 마한의 심장 영암 홍성지(2지명) vs 한옥마을 전주 안정기(2지명)
홍성지, 184수 백 불계승. 마한의 심장 영암 2-2 한옥마을 전주
뛰어난 균형 감각과 간결한 기풍을 자랑하는 두 선수가 만났다. 같은 2지명이지만 시즌 성적 차이로 인해 개막 당시 랭킹 21위였던 홍성지(7승 3패)는 14위까지 상승했고, 랭킹 17위였던 안정기(2승 4패)는 21위까지 소폭 하락했다.
닮은꼴 기풍을 반영하듯 초반부터 변변한 싸움 없이 바둑판이 채워졌다. 홍성지는 특유의 유연한 행마로 대세를 선점했고, 안정기는 자신의 장기를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완패하고 말았다. 벼랑에 몰렸던 영암이 2-2 동점을 만들며, 승부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 시즌 8승 3패로 박정환(원익), 김명훈(정관장)과 함께 다승 공동 2위 그룹에 합류한 홍성지(마한의 심장 영암)
5국 마한의 심장 영암 이재성(4지명) vs 한옥마을 전주 한상조(4지명)
이재성, 249수 흑 불계승. 마한의 심장 영암 3-2 한옥마을 전주
강유택의 선제점에 이어 양딩신의 추가점이 나올 때만 해도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던 전주 양건 감독은 이재성을 상대로 통산 9승 3패의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상조를 투입했다.
이번 시즌 마한의 심장 영암의 최종국은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6차례 풀세트 접전을 치렀지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최종국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영암 한해원 감독은 팀의 운명을 이재성에게 맡겼다. 팀과 자신이 동시에 5연패 늪에 빠져 있는 상황, 막중한 부담을 짊어진 이재성이 영암의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신중한 탐색전으로 시작된 바둑은 끝날 때까지 극과 극을 오갔다. 초중반 한상조가 우세를 점했던 국면을 중반 무렵 이재성이 집요하게 따라잡았다. 격차를 벌리며 이재성의 승리가 유력한 종반전. 한상조에게 대마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수순을 놓치며 재역전의 가능성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재성이 천당과 지옥을 오간 끝에 최종국의 승자가 되었다. 마한의 심장 영암이 극적으로 3-2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 상대 전적 3승 9패, 개인 5연패, 팀 5연패, 최종국 6연패 등 자신을 둘러싼 온갖 악조건을 딛고 천금 같은 결승점을 올린 이재성(마한의 심장 영암)
1국에서 믿었던 신진서의 패배로 절망적이었던 영암이 2패 후 3연승으로 리버스 스윕에 성공하며, 지옥 같은 5연패를 탈출했다. 쉬하오훙이 상대 팀 에이스를 꺾으며 불씨를 살렸고, 홍성지가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자, 마지막 히어로 이재성이 대역전극의 마침표를 찍었다. 영암은 이날 승리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향한 희망을 이어갔다.
18일(일) 11라운드 마지막 경기는 6위 GS칼텍스와 3위 영림프라임창호의 대결이다. GS칼텍스는 아직 첫 승을 신고하지 못한 4지명 권효진을, 영림프라임창호는 7승 2패를 기록 중인 극강의 3지명 송지훈을 각각 선발로 예고했다.
○●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8개 팀이 더블리그 방식으로 총 14라운드 56경기를 치른다. 정규리그 상위 4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우승 상금 2억 5,000만원을 놓고 최종 대결을 펼친다. 매 경기 5판 3선승제로 진행되며, 기본 시간 1분에 착수할 때마다 15초가 추가되는 피셔 룰 방식이 적용된다.
▲ 신진서(마한의 심장 영암)를 꺾는 대이변을 연출한 강유택(한옥마을 전주)이 검토실에 들어서자 양건 감독과 선수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 '유일한 전승자' 강유택의 포스가 느껴지는 한옥마을 전주 검토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