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이 수려한 합천과 풀세트 접전 끝에 힘겹게 승점을 추가했다. 22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4라운드 3경기에서 원익이 수려한 합천에게 3-2 재역전승을 거뒀다.
1국 원익 이지현(2지명) : 수려한 합천 판인(후보)
선두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팀의 대결.
수려한 합천은 1라운드에서 김승진과 박지현의 결장, 2라운드에서 주장 신민준의 결장, 3라운드에서 용병 판인의 결장 끝에 마침내 4라운드에서 완전체 라인업을 구성했다.
취저우 란커배 4강에 오르며 절정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판인은 이번 시즌 들어 첫 출전.
'1지명같은 2지명' 이지현은 3라운드에 이어 다시 한번 선봉장으로 나섰다.
전투에 능한 두 기사는 초반부터 거친 몸싸움을 벌였고, 특유의 공격력을 발휘한 이지현이 먼저 주도권을 잡았다. 불과 50여 수 만에 AI 형세가 9부 능선을 넘어선 것. 승기를 잡은 이지현은 판인을 내내 압박하며 완승국을 이끌었다. 이지현, 167수 흑 불계승.
▲ 김대용 심판(오른쪽)이 1국 개시 선언을 하고 있다.
▲ 지난 라운드까지 다소 부침을 겪었던 이지현이 예의 그 날카로운 공격력을 선보이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2국 수려한 합천 신민준(1지명) : 원익 이원영(4지명)
믿었던 용병 판인을 내고도 선제점을 빼앗긴 합천의 고근태 감독은 주장 신민준 카드로 반격을 노렸다. 반면 원익 이희성 감독은 신민준을 예상한 듯 상대 전적에서 5승 4패로 앞서 있는 이원영으로 맞불을 놨다.
중반까지 팽팽하던 흐름은 이원영이 상대 진영에서 자신의 돌을 무리하게 수습하는 과정에서 순식간에 신민준에게 기울었다. 우위를 확보한 신민준은 별다른 위기 없이 불계승을 거뒀다. 수려한 합천이 승부를 1-1 원점으로 돌렸다. 신민준, 165수 흑 불계승.
▲ 지난 시즌 4승 9패로 1지명의 체면을 구겼던 신민준이 이번 시즌 3승 1패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3국 수려한 합천 김승진(3지명) : 원익 진위청(후보)
이변이 발생했다. 제주 출신의 19세 신예 김승진이 대어를 낚았다.
이날 경기 전까지 2연패로 부진했던 김승진은 전투를 피하지 않는 공격적인 기풍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바둑을 구사하며 국면을 주도했다. 반면 진위청은 시종일관 김승진에게 끌려 다니며 완패했다.
얼마 전 <녜웨이핑배 바둑 마스터스>에서 중국과 일본의 젊은 강자들을 연파한 후, 결승에서 후야오위 9단마저 누르고 정상에 오른 김승진은 이번 시즌 세 번째 대국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수려한 합천이 2-1 리드를 잡았다. 김승진, 238수 백 불계승.
▲ 무서운 신예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김승진이 드디어 첫 승을 신고했다. 김승진은 김은지(원익)와 더불어 단 두 명뿐인 10대 바둑리거다. 전체 바둑리거들의 평균연령이 해마다 상승하는 가운데, 지난해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듯 젊은 선수들이 더욱 귀해지고 있다.
4국 원익 박정환(1지명) : 수려한 합천 이창석(2지명)
이날 경기는 양 팀 감독들의 치열한 신경전이 백미였다. 3국을 마칠 때까지 원익은 박정환, 합천은 이창석의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다. 양 팀 검토실에서 두 선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4국 오더 제출 직전까지도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14년 만에 개막 이후 2연패를 당하며 반전이 필요한 박정환과 최근 3연승으로 기세가 오른 이창석의 대결. 박정환은 중반 이창석의 실수를 추궁하며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 패색이 짙어진 이창석이 승부수를 던졌지만, 대마가 횡사하며 돌을 거뒀다. 박정환의 시즌 첫 승으로 승부는 다시 2-2 원점. 박정환, 174수 백 불계승.
▲ 바둑리그 통산 181승으로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박정환에게 개막 2연패는 낯선 기록이다.
5국 원익 김은지(4지명) : 수려한 합천 박지현(4지명)
결국 최종국에서 양 팀 4지명 간 맞대결이 성사됐다. 상대 전적은 김은지의 3승 1패 우세, 공교롭게도 4번의 만남은 2023년 석 달 새 모두 이뤄졌다.
팀의 운명을 짊어진 두 선수는 침착하게 국면을 운영했다. 박지현의 우세 속에 맞이한 중반 승부처에서 박지현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며 대세를 그르쳤다. 뒷심마저 강해진 김은지의 극적인 끝내기 승리로 원익은 3-2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김은지, 191수 흑 불계승
▲ 4라운드에서 최종국을 승리한 김은지는 1~2라운드에서 연속 선발로 나서 연승을 거둔 바 있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원익의 승리 요정이자 스윙맨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날 양 팀은 1지명부터 4지명, 그리고 외국인 선수까지 베스트 전력이 모두 나섰다. 승리한 원익은 3승 1패로 단독 2위를 유지했고, 아쉽게 패한 수려한 합천은 4위로 한 단계 하락했다.
이번 4라운드에서 각 팀의 주력 외국인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는데, 용병 맞대결에서 이긴 대만의 쉬하오훙(마한의 심장 영암)을 제외하고 투샤오위(GS칼텍스), 양딩신(한옥마을 전주), 판인(수려한 합천), 진위청(원익) 등 중국의 강자 4명이 잇달아 패배하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됐다.
23일 펼쳐질 4라운드 4경기 대진은 정관장-울산 고려아연.
하위권 탈출을 노리는 정관장은 김명훈(1지명), 시즌 첫 승이 절실한 울산 고려아연은 송규상(4지명)을 선발 카드로 제출했다. 두 기사의 상대 전적은 김명훈 기준 1승 무패.
2025-2026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내년 2월까지 8개 팀이 더블리그 방식으로 총 14라운드 56경기를 치른다. 정규리그 상위 4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우승 상금 2억 5,000만원을 놓고 최종 대결을 펼친다. 매 경기 5판 3선승제로 진행되며, 제한시간은 기본 1분에 추가 15초가 주어지는 피셔 룰이 적용된다.
▲ 이번 주 초 삼성화재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랴오위안허(왼쪽에서 세 번째)가 다음 날 소속팀 울산 고려아연의 경기를 앞두고 수려한 합천 검토실을 찾아 우승의 기운을 전했다.
▲ 2국을 이긴 신민준(오른쪽)이 검토실에 복귀하자, 평소 친분이 두터운 랴오위안허와 판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 경기 전 이희성 원익 감독에게 오늘 오더 구상에 어려움이 없는지 물었더니, "그렇다"는 솔직한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승부는 알 수 없는 법. 3국에서 진위청이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원익 검토실의 분위기가 사뭇 심각해졌다.
▲ 최종국 종료 후, 승자는 바둑TV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뜨고, 아쉽게 패한 박지현 주위로 수려한 합천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복기하는 모습이 어딘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