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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감독의 탁자...그는 시름도 함께 풀어 놓았을까
한국물가정보, SK엔크린 누르고 '유종의 미'
  • [KB바둑리그]
  • 바둑리그 2016-10-22 오전 6:49:58
▲ 저녁 하늘에 붉은 노을이 물들듯 5개월여의 정규시즌이 저물어가는 즈음이다. 평소엔 무심히 지나쳤을 어느 감독의 탁자가 불현듯 눈에 들어온다.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는 쥘부채와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 지갑을 가지런히 늘어 놓은 데서 감독의 꼼꼼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팀의 명찰. 고무밴드로 묶어온 이것을 매 경기 풀어 놓으면서 그는 삶의 시름도 헤쳐 놓았을까.

201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8라운드 2경기
웃으며 끝낸 물가정보, 막판에 찝찝해진 SK엔크린

정관장 황진단의 전반기 7연승과 뒤를 이은 포스코켐텍의 10연승, 거기에 '기린아' 신진서의 12연승까지. 숱한 연승 퍼레이드로 화제를 뿌렸던 2016 정규시즌이 종착역을 코앞에 두고 있다.

지난 주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네 팀이 가려진 마당에 팀 승부는 별반 중요하지가 않다. 한해 농사를 몇위로 마감하느냐 하는 자존심만 약간 걸려 있는 상태다.

그래도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한다. 승리 시 주어지는 350만원의 수당에 랭킹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22일 저녁 바둑TV에서 열린 18라운드 2경기에선 그런 변수가 크게 작용했다.

마지막에 개인 승리를 위해 싸운 한국물가정보 선수들의 투지가 포스트시즌을 확정 짓고 조금은 느슨해져 있는 SK엔크린 선수들을 압도했다. 누가 이기든 3-2 정도로 예상됐던 승부가 4-1이라는 대차가 나버렸다.


▲ 이태현에게 상대 전적 4승1패로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안국현(오른쪽)이 기분 좋은 선제점으로 승리의 선봉이 됐다.


안성준 12승, 한태희 11승...최고의 성적으로 시즌 마쳐

경기 전 오더에서 SK엔크린의 허허실실이 감지됐다. 1지명 박영훈을 빼고 올 시즌 KB리그에 한 번도 등판 못한 퓨처스 선수 박시열에게 기회를 줬다. 어차피 준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마당에 3위냐 4위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보다는 주전 선수들의 막바지 컨디션이나 점검해보자. 최규병 감독은 그런 생각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SK엔크린으로선 이날 경기가 적잖이 실망이었을 것이다. 결과도 결과지만 진 판들의 내용이 하나 같이 좋지 않았다. 부담 없이 임한다는 게 오히려 빨간등만 확인하는 셈이 됐다. 직전 정관장 황진단과의 경기에 이어 연속 1-4로 크게 패한 스토리도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SK엔크린은 물오른 안성준(오른쪽)이 원성진의 펀치를 꽁꽁 묶으며 흑 3집반승을 거둔 게 유일한 승리가 됐다. 올해 바둑캐스터 이소용씨와 신방을 꾸민 원성진은 다소 불만인 8승7패로 시즌을 마감.



▲ 지난해 10승6패의 성적을 훨씬 뛰어 넘는 12승3패로 정규시즌을 마친 안성준(25.랭킹 7위). "컨디션이 가장 안 좋을 때 신진서를 만나 패한 것이 아쉽다"는 말로 포스트시즌에서의 설욕 의지를 다졌다.


그에 비한다면 5위로라도 시즌을 마치고자 하는 한국물가정보 선수들의 목표 의식이 차라리 뚜렷했다 할 수 있다. 3지명 안국현이 선제점을 올린 다음 주장 원성진이 안성준에게 패했으나, 2지명 백홍석이 장고대국에서 승리하며 2-1로 앞서나갔다. 후반 속기전에선 올 시즌 최악의 슬럼프에 있던 박승화가 민상연을, '1지명 같은 5지명' 한태희는 박시열을 제압하고 11승째를 수확하는 등 '유종의 미' 그대로의 승전보가 이어졌다(한국물가정보 4-1 SK엔크린).


▲ 한국물가정보의 정규시즌 마지막 동그라미는 5지명 한태희(오른쪽)가 그렸다. SK엔크린의 퓨처스 선수 박시열은 팀의 마지막 경기에 첫 출전의 기회를 잡았지만 내용이 의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 지난해 5승11패의 성적을 올해 11승5패로 돌려 놓은 한태희(23. 랭킹 42위). 팀내 리딩 히터로 활약하는 동시에 박진솔(10승6패)과 더불어 올 시즌 '5지명 반란'의 주역이 됐다.


9승7패로 정규시즌을 마친 SK엔크린은 3위 티브로드(9승6패)가 마지막 경기에서 포스코켐텍에게 영봉패를 당하지 않는 한 4위가 확정됐다. 반면 한국물가정보는 같은 7승9패인 BGF리테일CU를 개인 승수에서 밀어내고 잠정 5위에 오르면서 포스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을 애둘러 웃음으로 털어내는 모습이었다.

22일엔 나란히 6승9패를 기록 중인 8위 Kixx와 7위 화성시코리요가 18라운드 3경기를 벌인다. 대진은 허영호-안조영,송지훈-홍성지,김기용-김정현,최재영-박정상, 윤준상-이영구(이상 앞이 Kixx).

9개 팀이 더블리그를 벌여 상위 4팀이 포스트시즌에 올라 순위를 다투는 2016 KB국민은행 바둑리그의 팀 상금은 1위 2억 원, 2위 1억 원, 3위 6,000만 원, 4위 3,000만 원. 상금과 별도로 정규시즌 매 대국 승자는 350만원. 패자는 60만원을 받는다.


▲ 장고대국(1국). 백홍석(오른쪽)이 우하쪽 강승민의 잘못된 수습을 놓치지 않고 맹공을 퍼부은 끝에 대마를 잡았다. 백홍석은 8승8패, 강승민은 6승9패로 각각 시즌을 마쳤다.












▲지든 이기든 늘 왁자지껄한 한국물가정보팀. '화합상' 내지 '소문만복래상'이 있다면 단연 수상감이다. 이날 후반 속기전 두 판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한종진 감독은 일찌감치 판을 접고 마지막 회식에 나서기도.



▲ '탁자'의 주인공 최규병 감독(왼쪽)과 그 앞에서 검토에 열중하고 있는 SK엔크린 선수들. 실속 없고 요란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최 감독이 가려 뽑은 선수들인 만큼 성실함 면에선 따라올 팀이 없다. 단, 상대적으로 폭발력이 부족한 것은 단점. '3-2 승부 전문팀'이라는 별칭 그대로 올해도 네 차례를 제외하곤 모두 3-2 승부만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