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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지고, 49년 만에 '옥집활' 등장
김지석-최철한 대국에서 사상 두 번째 출현
  • [KB바둑리그]
  • 바둑리그 2016-08-21 오전 4:47:49
▲ 중반의 열기를 더해가는 KB리그. 그 정점에 있는 주장 맞대결에서 49년 만에 희귀한 '옥집활'이 등장했다.

201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0라운드 3경기
사활책에서나 보던 '옥집활' 실전 등장....사상 두 번째

바둑에서 '옥(玉)집'은 집이 아니다. 이건 18급도 안다. 속말로 '잘룩이집'이라고 하는 옥집은 상대가 단수를 치면 메워야 하는 곳이므로 집이 될 수가 없다.

하지만 바둑의 오묘함은 이 옥집만으로도 사는 형태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옥집활(또는 옥집삶)'이다. 아래 <1도>를 보자. 이 그림에서 흑돌은 실집이 없이 옥집 두 집만을 갖고 있으나, 붉은 동그라미 두 곳이 모두 착수 금지점에 해당하므로 백은 흑을 잡을 수 없다. 절묘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 <1도> 옥집활의 예


사활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 희귀한 형태가 실로 오랜만에 프로의 실전에서 등장했다. 무대는 20일 저녁에 열린 201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0라운드 3경기 제3국, 오묘한 형태를 만들어낸 두 주인공은 김지석과 최철한이었다.

과정은 이러했다. 이날 최철한은 시작하자마자 김지석의 대마에 맹폭을 가했는데,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한 장면에서 김지석이 상상도 못한 수단으로 백 대마를 살려냈다. 그것이 아래의 옥집활이다.


▲ 2016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0라운드 3경기 제3국 ●최철한 ○김지석

형태가 다소 복잡하지만 가와 나, 두 곳이 실제 집이나 다름 없는 형태로 살아 있다. A의 곳 패는 만패블청이라 흑이 들어올 수 없다.


국내 프로의 공식대국에서 옥집활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최초는 1967년 제5회 청소년배 결승(故)강철민 3단-윤기현 6단의 대국에서 나온 것이 당시 창간한 바둑 잡지를 통해 확인됐다.


▲ 67년 기계(棋界. 월간 바둑의 전신) 창간호에 실린 최초의 옥집활 기보. 당시에도 상당한 화제를 뿌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신의 한 수'가 될 뻔 했던 김지석의 귀수(鬼手)

다시 김지석-최철한의 대국으로 돌아가, 이 승부는 김지석이 옥집활로 기사회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패했다. 살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피해가 커서 끝내 역전할 수 없었다(247수 최철한 흑 불계승).

하지만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할 때 김지석이 타개해낸 첫 수가 지금도 눈에 어른거려 여기에 소개한다. 이 판을 김지석이 이겼다면 알파고-이세돌 대국에서 나온 '신의 한 수'에 버금가는 수로 평가 받지 않았을까.


▲ 위의 옥집활의 프리퀼에 해당하는 장면. 최철한이 흑▲로 백 대마에 비수를 들이댔을 때 김지석이 백1로 붙여간 수가 모두를 놀라게 한 귀수(鬼手)였다. 이현욱 해설자는 보는 즉시 '신의 한 수'가 연상된다며 알파고가 만약 이 수를 당했다면 버그를 일으켰을 거라고. 백1의 묘미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가와 나, 두 군데의 단수를 보류했다는 점. 이 기막힌 수로 김지석은 사지(死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결국 옥집활의 형태가 출현했다.


포스코켐텍 4연승, 나현 7연승

팀 승부에선 최철한-나현-변상일로 이어지는 1~3지명이 3승을 합작한 포스코켐텍이 윤준상과 최재영의 2승에 그친 Kixx를 3-2로 눌렀다. 팀 스코어 2-2 상황에서 변상일이 김기용에게 다 졌던 바둑을 뒤집은 것이 결승점이 됐다. 신진서와 더불어 무패 행진을 하고 있던 나현은 허영호를 물리치고 7연승을 질주했다.

시즌 초반 1승4패로 최하위까지 밀려났던 포스코켐텍은 4연승을 달리며 5승4패, 동률의 SK엔크린을 개인 승수 하나 차이(포스코켐텍 24승,SK엔크린 23승)로 따돌리고 2위에 올라섰다. 나현,변상일(5승2패)이 잘해주고 있는 데다 주장 최철한까지 3연승으로 살아나면서 후반기 큰 도약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이현욱 해설자는 중계를 마무리지으면서 "후반기에 정관장 황진단의 독주를 견제할 팀은 포스코켐텍 밖에 없다"고 단언하기도.


▲ 포스코켐텍 주장 최철한과 2지명 나현의 승리 인터뷰.

(최철한)"(보기 드문 옥집활이 나왔는데)잘 뒀으면 그로기로 몰아갈 수 있었을텐데 실수가 좀 있었다" "(장생이라든가 특이한 사건을 잘 만들어내는데) 많이 연구된 수보다는 그 때 그 때 즉흥적으로 두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현)"(결정적일 때 느슨하다는 평가가 있다) 중반에 더 쉽게 이길 수 있는 수를 찾곤 하는데 안 좋은 습관인 것 같다" "(같은 전승자인 신진서와 만난다면)어렸을 적에는 잘 이겼는데 지금은 못 이길 것 같다. 피하고 싶다(웃음)" "(옷을 무는 동작은 무의식 중에 하는 것인가) 그렇진 않은데...실수했다고 생각할 때 그런 동작이 나오는 것 같다"


신진서-이동훈 '미래 권력' 첫대결

19일엔 선두(7승1패)정관장 황진단과 8위(3승5패) 티브로드가 10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벌인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티브로드가 7연승의 정관장 황진단을 꺾고 중위권에 올라설지, 아니면 전반기에 유일한 패배를 안긴 티브로드에게 정관장 황진단이 설욕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결.

대진 또한 신진서-이동훈,김명훈-김승재,박진솔-박정환,한승주-박민규,이창호-강유택(이상 앞이 정관장 황진단)등 팽팽하게 짜여 있어 예측 불허다. 장고대국에서 제대로 맞붙은 신진서와 이동훈은 이번이 첫 공식 대결.

9개팀이 더블리그를 벌여 상위 4팀이 포스트시즌에 올라 순위를 다투는 2016 KB국민은행 바둑리그의 팀 상금은 1위 2억 원, 2위 1억 원, 3위 6,000만 원, 4위 3,000만 원. 상금과 별도로 정규시즌 매 대국 승자는 350만원. 패자는 60만원을 받는다.


▲ 제5국. 초반 일찌감치 좌하 일대의 흑을 포획하며 질 수 없는 형세를 구축했던 김기용(왼쪽). 하지만 이후의 지나친 안전 운행이 뼈아픈 1집반 역전패를 불러왔다. 6연패의 사슬을 끊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김기용은 7연패, 45명의 KB리거 중 유일한 전패자로 남았다.









▲ 마지막 변상일의 승리가 확실한 시점에서 철수 준비를 마친 포스코켐텍. 이날도 김성룡 감독(사진 오른쪽)은 끝나자마자 세종시로 가는 막차를 타기 위해 뛰었다.



▲ 중요한 고비에서 번번이 주저앉는 모습을 보이는 Kixx(4승5패,7위). 4지명 김기용의 부진에 3지명 허영호까지 슬럼프 기미를 보이고 있어 분위기가 꽤나 가라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