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리그의 역사와 함께 가는 '최장수팀' 킥스가 때이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지난 시즌의 주전들을 보호연한 만료로 모두 내보내고 새롭게 팀을 꾸렸지만 9라운드까지 단 1승에 그쳤다.
2020-2021 KB국민은행 바둑리그 9라운드 4경기
한국물가정보, 7승2패로 단독 2위
"너무 아쉽네요."
"분위기가 좋았었는데요."
중계석의 이희성 해설위원과 이소용 진행자가 자기 일처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킥스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에서다.
"오늘 한상훈 선수가 신민준 9단을 꺾으면서 승리의 기대감이 높았는데요."
"지금 안성준 선수도 무척 유리하지 않습니까. 중계하면서 누구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거 참..."
대역전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 하다가 돌연 박영훈 9단이 안정기 6단에 일격을 맞으면서 승부가 끝나자 이희성-이소용 콤비의 멘트는 허탈함을 넘어 애잔함마저 띠었다. 24일 저녁 바둑TV에서 열린 2020-2021 KB국민은행 바둑리그 9라운드 4경기의 결말 부분은 이랬다.
▲ 중계석의 이소용-이희성 콤비.
2006년 창단해 15년 연속 참가하고 있는 '최장수팀' 킥스가 8패째(1승)를 당하면서 포스트시즌 경쟁에서 중도 탈락했다. 4위까지 진출하는 포스트시즌의 마지노선은 5할 승률인 7승7패. 킥스는 남은 5경기를 모두 이긴다 해도 6승8패로 이 기준에 미달한다.
탈락이 눈앞에 와있는 극한 상황에서 이번 시즌 처음으로 1.2지명을 후반에 포진시키는 오더를 냈다. 전반전의 세 판에서 한 판만 이겨줘도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복심이 내포된 배수진. 반면 한국물가정보는 1~3지명을 순서만 약간 달리했을 뿐 모두 1~3국에 투입하면서 3-0 승부를 노렸다.
▲ 전반기와는 전혀 다른 대진으로 맞붙은 대결에서 한국물가정보가 디펜딩 챔피언의 저력을 보이며 킥스를 다시 3-2로 눌렀다. 킥스의 승리는 유일하게 1.2지명이 동반 승리한 6라운드가 전부.
기대하지 않던 곳에서 홈런이 터졌다. 먼저 2패를 당한 막다른 골목에서 퓨처스 한상훈 8단이 랭킹 4위의 강자 신민준 9단을 꺾는 개가를 올렸다. 이 무렵 안성준 9단도 지기 어려운 형세로 돌아선 만큼 김영환 감독이 고대하던 시나리오가 바야흐로 꽃을 피울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으레 이길 걸로 믿고 있던 박영훈 9단이 안정기 6단에 패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킥스의 꿈은 삽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한국물가정보 3-1 승). 이 경기를 중계한 바둑TV의 또 다른 유튜브 방송에선 "한상훈 8단이 만루홈런을 쳤는데 안정기 6단이 싺쓸이 3루타로 받아친 격"이란 멘트가 흘러나왔다.
▲ 2시간 장고판에서 무려 5시간 51분을 겨룬 두기사. 퓨처스 한상훈 8단(오른쪽)이 신민준 9단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끝내 반집을 지켜내는 집념을 발휘했다. (계가 직전 신민준 9단이 돌을 거두면서 결과는 불계승 처리). 1월 랭킹은 신민준 4위, 한상훈 53위.
"커제가 지켜본다"...유튜브 대화창 시끌
신민준 9단과 중국 커제 9단이 벌이는 LG배 결승 3번기가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신민준 9단의 컨디션이 어떤지 커제로서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침 관전하기 좋은 일요일 저녁이기도 했다.
신민준-한상훈 전이 중계되는 바둑TV의 유튜브 방송 대화창에 "커제 9단이 OO사이트에서 아까부터 이 판을 지켜보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내 "맞다. 신진서 9단과 중국 퉁멍청 9단도 들어와 있다"는 확인글이 올라오면서 대화창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 최근 GS칼텍스배 예선에서 탈락하고 맥심배 본선에서도 패하는 등 난기류에 휩싸인 듯한 인상의 신민준 9단. 더구나 이날은 하위 랭커를 상대로 악전고투하고 있었으니 대화창이 온통 "커제는 좋겠네" "이 컨디션으론 해보나 마나네" 등등의 비관적인 얘기로 가득했던 것은 당연했다. 이 모든 우려를 불식하고 신민준 9단은 일주일 뒤 새역사를 써낼 수 있을까.
한편 주장이 패하고도 승리하는 저력을 보인 한국물가정보는 셀트리온에 이어 두 번째 7승 고지에 오르며 자칫 싱거울 수도 있었던 선두 경쟁에 불을 붙였다. 9라운드를 마친 시점에서 7승팀이 둘, 4~5승 팀이 다섯인 구도 역시 이제부터가 점입가경임을 예고해주고 있는 상황. 개인 다승에선 원성진 9단만이 전승을 달리는 가운데 신진서 9단과 심재익 4단이 8승1패로 바짝 뒤를 쫒고 있다. 박정환, 김지석 9단은 7승2패.
8개팀이 더블리그를 벌여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네 팀을 가리는 정규시즌은 다가오는 목요일부터 10라운드에 들어간다. 대진은 포스코케미칼-킥스(28일), 셀트리온-정관장천녹(29일), 수려한합천-한국물가정보(30일), 바둑메카의정부-컴투스타이젬(24일).
▲ 장고A: 2시간. 장고B: 1시간(초읽기 1분 1회). 속기: 10분(40초 초읽기 5회)
▲ 처음엔 강동윤 4연승, 이후엔 김정현 4연승. 근 5년 만에 이뤄진 대결에선 1시간 5분 만에 강동윤 9단이 승리하며 다시 앞섰다.
▲ 이번 시즌의 새내기 세 명(문민종, 백현우, 최광호)은 하나 같이 가시밭길을 걷고 있어서 신인상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 중 하나인 백현우 2단(왼쪽)도 박하민 8단의 벽을 넘지 못하며 3승5패.
▲ 지난 경기에서 심재익 4단을 꺾은 허영호 9단(왼쪽)은 안성준 9단의 완력 앞에서 기세를 이어가지 못 했다.
▲ 바둑TV의 중계 카메라에서 벗어나 있던 4국에서 복병 안정기 6단이 박영훈 9단을 꺾으며 팀 승리를 결정했다.
▲ 7라운드에서 셀트리온에 당한 영봉패의 수모를 8.9라운드 연속 승리로 만회해가고 있는 한국물가정보. 다음 라운드는 박정환의 수려한합천과 대결한다.
▲ 다승왕도 차지하는 등 11시즌을 바둑리거로 활약하다 올 시즌 처음 퓨처스에서 뛰는 한상훈 8단(33). 그래서 일까. 7라운드에서 최정 9단을 꺾은 데 이어 다시 신민준 9단마저 꺾는 비장함을 보여주고 있다. 53위까지 내려앉은 랭킹도 다음 달엔 상승이 기대되는 상황.